[어게인뉴스=김혜경 기자] 관세청이 고물가와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민생을 위협하는 탈세와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해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단순 단속을 넘어 조사 체계를 재편하고 조직까지 확대하는 등 '강한 관세행정'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관세청은 2026년 3월 24일 서울본부세관에서 전국 세관 관세조사 부서 국·과장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세관 관세조사 관계관 회의'를 열고, 올해 조사 방향과 중점 과제를 논의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성과를 점검하는 동시에 대내외 경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재정비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관세청이 적발한 탈세 및 법규 위반 규모는 총 2조 7천억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탈세 적발액은 4,442억 원으로 전년 대비 51% 증가했다. 고가 사치품의 수입가격을 낮게 신고하는 방식이나, 고세율이 적용되는 덤핑방지관세를 회피하려는 시도를 집중 점검한 결과로 풀이된다.
법규 위반 적발 규모도 2조 2,578억 원에 이르렀다. 안전 요건을 갖추지 않은 생활·산업용품 관련 위반이 3,643억 원, 국산으로 속여 판매하는 원산지 허위 표시가 1,805억 원으로 집계되면서, 소비자 안전과 시장 질서를 동시에 위협하는 행위가 광범위하게 드러났다.
◆'민생·안전' 중심으로 조사 체계 재편
관세청은 올해 관세조사의 최우선 목표를 '민생 안정'에 두고, 조사 자원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하기로 했다. 전체 조사 규모는 예년 수준을 유지하되, 국민 생활과 직결된 분야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우선 '민생물가 특별점검팀'을 중심으로 육류 등 주요 먹거리 품목의 가격 교란 행위를 집중 점검한다. 수입가격을 조작해 시장 가격을 왜곡하는 탈세 행위와 사치재 가격 부풀리기 등에도 강도 높은 조사가 예고됐다.
국민 안전과 직결된 분야에 대한 점검도 한층 강화된다. 관세청은 이미 '초국가범죄 대응본부'를 통해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수입·유통을 적발해 왔으며, 지난해에만 1,391억 원 규모의 위반 사례를 확인했다. 올해는 생활용품은 물론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기계·장비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해 안전 사각지대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무역 질서를 흔드는 반칙 행위에 대한 대응도 강화된다. 새롭게 도입되는 '정기 덤핑심사제도'를 통해 외국 기업의 덤핑 및 우회 덤핑을 상시 점검하고, 원산지 허위 표시 단속을 강화해 소비자의 선택권 보호에 나선다. 이는 국내 산업 보호와 공정 경쟁 환경 조성을 동시에 겨냥한 조치다.
특히 조사 역량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도 눈에 띈다. 서울·부산·인천본부세관에 전담 조직이 신설됐고, 서울본부세관에는 중대 사건을 전담하는 특수조사팀 2개가 추가 배치됐다. 이들 조직은 필요 시 즉시 강제 수사로 전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강한 단속'과 '기업 지원' 병행
관세청은 엄정한 단속 기조와 함께 기업 부담 완화 방안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성실 기업에 대해서는 조사 기간을 줄이고 절차를 간소화한 '간이 관세조사 제도'를 활성화해 경영 부담을 낮춘다.
또 최근 중동 지역 정세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는 관세조사를 일정 기간 유예하는 조치도 허용한다. 조사 사전 통지 기간 역시 기존 15일에서 20일로 확대해 기업의 대응 준비 시간을 늘렸다.
이명구 관세청장은 회의에서 "엄정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갖춘 관세조사를 통해 국민 삶을 보호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며 "악의적 탈세와 불공정 행위에는 끝까지 대응하되, 성실한 납세자에게는 신뢰받는 파트너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관세청의 이번 전략이 단순한 단속 강화가 아니라 '선별적 집중'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평가한다. 한 무역 전문가는 "물가와 안전, 산업 보호를 동시에 겨냥한 조사 체계는 최근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라며 "다만 강도 높은 조사와 기업 부담 완화가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가 정책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