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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일가 권한은 커지는데… 책임은 비껴간다"

총수일가 미등기임원 급증·이사회 견제력 약화…상법 개정이 '독립성' 회복의 분수령 될까

[어거엔뉴스=김혜경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의 지배구조를 분석한 결과, 우리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여전히 총수일가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 상장사에서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비율이 크게 늘면서, 실질적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분석의 핵심 우려로 제기됐다.

 

총수 있는 77개 집단 중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는 회사 비율은 지난해보다 증가했고, 상장사에서의 비율은 23.1%에서 29.4%로 크게 뛰었다. 총수일가가 맡고 있는 미등기임원 직위 259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대기업집단에서 책임 회피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가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등기이사로 재직할 경우 강화된 충실의무 규정을 적용받지만, 미등기임원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의무는 비껴갈 수 있다. 공정위가 “권한과 책임의 괴리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총수일가의 등기이사 등재 비율도 꾸준히 늘고 있다. 전체 등기이사 수에서 총수일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7%에 이르며, 특히 부영·영원·농심 등 일부 집단에서는 총수일가의 경영 참여가 두드러졌다. 총수 본인은 평균 2.8개, 2·3세는 평균 2.6개의 이사 직함을 겸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등기임원 증가 추세와 맞물려, 등기·미등기를 오가며 실질적 경영권을 유지하는 총수 중심 구조는 오히려 더 공고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사회 운영의 외형적 독립성은 일정 부분 개선되었지만, 실질적 견제 기능은 여전히 미흡했다. 상장사 사외이사 비율은 51.3%로 법정 기준을 크게 상회했고, 비상장사 일부도 자발적으로 사외이사를 뒀다. 그럼에도 이사회 안건의 99% 이상이 원안대로 통과됐고, 반대나 수정 사례는 최근 5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독립된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면 나타나기 어려운 수치다. 사외이사 비율이 높을수록 원안 가결률이 소폭 낮아지는 경향은 확인됐지만, 전체 대기업집단 구조에서 이를 ‘실질적 견제’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총수 있는 집단일수록 사외이사 비율이 더 낮고, 원안 가결률은 더욱 높아 이사회 독립성이 구조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분명히 드러났다.

 

기업들이 최근 빠르게 도입하고 있는 ESG위원회 설치는 눈에 띄는 변화다. 도입률은 5년 만에 약 30%포인트 상승한 57.3%로 나타났다. 사회적 관심과 글로벌 규범 변화에 대응하려는 기업들의 반응이 빠르게 반영된 결과지만, 보상위원회나 감사위원회 등 핵심 감시 기능과 관련된 위원회 설치는 총수 있는 집단에서 오히려 낮아, 총수일가의 보수·내부통제 관련 감시 체계는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수주주권도 제도 도입 자체는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집중투표제·서면투표제·전자투표제 등은 88% 이상의 상장사가 도입하고 있으며, 올해 소수주주권 행사 건수는 93건으로 역대 최고였다. 그러나 집중투표제의 경우 대부분의 회사가 정관으로 배제하고 있어 실제 실시된 사례는 단 한 건에 그쳤고, 전자투표 도입률이 높아도 실제 참여율은 1%대에 머물렀다. 제도는 마련됐지만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한계가 큰 셈이다.

 

공정위는 올해 상법 개정으로 독립이사 제도 강화, 사외이사 의무 비율 상향, 집중투표제·전자주총 의무화 등이 시행되면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총수일가 중심의 구조가 유지되는 한 제도적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특히 미등기임원 확대와 이사회 독립성 부족은 제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관행적·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해 분석은 한국 대기업지배구조가 여전히 형식적 투명성에 머물러 있으며, 실질적 견제와 책임 경영 체계 구축에는 큰 과제가 남아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보고서가 됐다.

 

공정위측은 "앞으로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지속적으로 공개해 시장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총수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얼마나 변화할지는 결국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과 투자자·시장 감시의 압력이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