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뉴스=김혜경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의 2024년 내부거래 현황을 공개했다. 숫자는 늘 정직하다. 10년간 내부거래 비중은 12% 안팎에서 크게 줄지 않았고, 상위 10대 그룹만으로 전체 내부거래 금액의 70% 가까이를 차지한다. 겉으론 투명경영을 말하지만, 그룹 내부의 자금·자산·상표권까지 촘촘히 연결된 '그들만의 경제권'은 여전히 견고하다.
대기업집단 92곳, 2,703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해외'.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의 해외 계열사 거래 비중은 25.3%로 국내 계열사 간 거래 비중(11.8%)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해외법인을 통한 구조와 내부 거래의 흐름은 해마다 굵어지고 있다.
국내 내부거래 비중이 30%를 넘는 대방건설과 중앙, 포스코는 2년 연속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내부거래 금액으로 보면 현대자동차, SK, 삼성, 포스코, HD현대 5개 집단이 전체의 65.7%를 차지했다. 단일 회사로 좁혀보면 총수일가 지분이 1% 이상이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80~100%대에 이르는 회사도 25곳이나 된다. 내부에서 벌어지고 내부에서 끝나는 시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SI·자동차 제조업에서 가장 두드러진 집중…총수일가 지분 높을수록 내부거래↑
업종별로는 예상대로 SI(시스템 통합)와 자동차·트레일러 제조업이 압도적이었다. SI 업종은 내부거래 비중이 60% 안팎으로 수년째 업종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네이버·유진·세아·애경 등이 포함된 대기업 SI 계열사 간 거래는 이미 시장 일부를 사실상 '내부 조달 구조'로 굳혀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거래 금액으로는 자동차·트레일러 제조업이 43.8조 원으로 가장 컸다. 4년 만에 약 50% 급증했다. 자동차 산업의 부품·조립·연구개발·물류까지 수직계열화된 구조가 더욱 견고해진 셈이다.
총수일가 지분률과 내부거래 비중의 관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구간일수록 내부거래 비중이 높게 나타났고, 특히 총수 2세 지분이 50%를 넘는 구간에서는 내부거래 비중이 뚜렷한 상승을 보였다. 상속·승계 국면에서 내부거래가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는 기존 지적이 그대로 재확인된 셈이다.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전체 총수 집단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10대 그룹'에 포함되는 규제대상 회사만 따로 보면 내부거래 비중이 16.1%로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대규모 그룹일수록 내부거래를 통한 경제권 유지가 더 뚜렷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자금·담보·상표권까지…'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흐름'
상품·용역 거래만이 아니다. 자금과 자산, 상표권까지 그룹 내부의 다양한 통로로 이동한다.
우선 자금 내부거래(계열사 간 차입)는 34조4천억 원 규모다. 특수관계인에게 자금을 대여한 집단으로는 넥슨, 글로벌세아, 유진, 셀트리온, SM이 상위권에 올랐다. 유가증권 내부거래는 206조 원 이상으로 삼성, 미래에셋, SK 순으로 많았다. 담보 제공 역시 롯데·신영·한화 등이 1조 원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상표권 거래는 그룹 내부거래의 '보이지 않는 핵심축'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상표권 유상 사용 집단은 5년간 46개에서 72개로 증가했고, 사용료 규모는 2조 원을 넘어섰다. LG·SK·한화·CJ·포스코·롯데·GS 등 7개 그룹이 전체 상표권 매출의 62% 이상을 가져간다.
더 중요한 대목은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인 회사가 전체 상표권 사용료의 81.8%를 수취한다는 점이다. 상표권이 총수일가의 수익원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CJ의 경우 상표권 사용료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지주회사의 핵심 수익모델로 자리 잡은 사례도 확인됐다.
공정위는 올해도 내부거래 데이터를 공개하며 "자율적 감시와 시장 기능 강화"를 언급했다. 하지만 데이터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대한민국 대기업집단의 내부경제권은 여전히 넓고 단단하며, 그 축은 총수일가와 해외 계열사, 그리고 SI·자동차 등 특정부문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내부거래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그 구조가 10년째 변하지 않고, 그 흐름이 특정 소수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의 공개가 감시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내부거래의 무게를 바꿀 '진짜 변화'는 결국 기업집단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